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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부수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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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부수성비 이미지 대구부수성비 이미지 대구부수성비 이미지 대구부수성비 이미지
    • · 주소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산 83-5번지 영남제일관 앞
    • · 전화번호 : 053-666-2172
조선 고종 때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해 온 김세호가 대구부성을 수리한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대구부성은 영조 때 경상관찰사 민응수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는데 그 후 성이 훼손되어도 제대로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던 것을 김세호가 수리한 것이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비문에는 공사에 관한 내용과, 유공자에게 상을 내린 일이 적혀 있다. <좀 더 알아보기> 민응수가 대구읍성을 쌓고 난 뒤에 수성창(蓚城倉)을 부분적으로 수리하였으나 근본적인 수리는 못했다. 그러다가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 도호부사로 부임했던 김세호(金世鎬)가 크게 보수하게 되었다. 그는 부임한 이듬해인 1870년(고종 7년) 봄인 3∼4월 경에 수리를 시작하여 그해 11월에 끝냈다고 수성비에 적고 있다. 또, 수성비 비용이 민간 기부금으로 충당했다는 것으로 보아 수금에 있어서 강제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수성비에 의하면 원래 것보다 높이를 더 높이고 확장한 결과 신축이 97보, 개축이 118보, 보축(補築)이 1,409보, 치첩 신축이 2,608보, 문루 및 공해, 신건(新建)이 72간, 중건이 37간, 중수가 57간 공해 각처의 보수가 256간이었다. 이때 동서남북 대문의 문루를 고쳐짓는 것 외에 성벽 위에 6개의 누각을 세웠다. 또, 모든 누(樓)는 단청을 올리고 치첩은 백회(白灰)로 분장하였으며, 공사가 끝난 뒤 성대한 낙성식도 열고 이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여 유공자를 포상하였다고 수성비는 적고 있다. 현재 영남 제일관문 앞에 영영축성비(嶺營築城碑)와 함께 서 있는 수성비는 당시 관찰사이던 김세호가 글을 짓고 글씨는 수성을 하면서 책응간역(策應看役)으로 있던 절충장군(折衝將軍) 최석로(崔錫魯)가 쓴 것이다. 원래 이 비석이 세워진 곳은 남문 밖 민응수가 영영축성비를 세운 바로 곁이었으나 이 수성비 역시 1906년 대구 읍성이 헐리면서 갈 곳이 없어졌다가 1932년 현재의 대구 향교 경내로 이전되었으나 다시 영남 제일관문이 중건되면서 만촌동으로 이전했다. 청색 화강석인데 팔작지붕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비부는 황백색 화강석으로 장방형이다.
상세정보
이용시간 제한없음
장애인 편의시설 장애인화장실, 장애인 주차장
한국어 안내서비스 안내 서비스 없음
외국어 안내서비스 안내 서비스 없음
주차시설 공용주차장

· 대구부수성비     전화번호 :  053-666-2172      관광안내문의 :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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