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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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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구시청 관광과

등록일 : 2014.12.10

조선을 건국한 태조(이성계 李成桂)는 이전 고려 왕조의 불교 중심 정책을 억제하고 일상 생활 예절의 근본이 되는 儒學(유학)을 널리 펴고자 하였다. 그와 동시에 교육을 통해 백성을 문맹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지역전통문화를 선도하며, 유학의 성현등의 제례의식을 올려 예절의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향교를 세웠고, 대구향교도 이 중에 하나이다. 향교는 당초 1398년 교동에 세워졌으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932년 일제침략기 유림집회로 인한 항일운동 봉쇄를 위해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대성전에서는 유교문화의 중흥을 위해 영남각지에서 유림등이 모여들어 연2회 춘추중월(2,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대제를 올리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 로 공포를 기둥위와 기둥사이에로 짜올린 다포식(多包式) 건축으로 단층 맞배기와집이다. 현재 대구광역시 문화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에도 명륜당과 유림회관에서는 사서경전 강의, 충효교실, 전통혼례 등이 이루어지는 살아있는 현대의 향교 역할을 다하고 있다. <좀 더 알아보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신라 이래의 불교 정책을 억제하고 일상 생활 예절의 근본이 되는 유학을 널리 펴고 백성들을 무지로부터 해방하여 단군의 개국이념인 홍익인간을 실현하고자 전국 234개 군현에 향교를 세웠다. 이때가 1398년 (단기 3731년) 태조 7년이었다. 향교의 기능으로서는 첫째, 교육을 통해 백성을 문맹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큰 목적과 둘째, 지역전통문화활동의 근거지로서의 선도역할과 셋째, 공자님을 위시한 여러 성현 군자와 큰 스승을 모셔 제례를 올림으로서 예절의식을 널리 확산하고, 도덕적 인간상 구현과?자아성취와 바람직한 행동의 변화를 추구하는 교육의 목표를 분명히 하였다. 대구향교도 위 목표를 수행하면서 여러 차례 이전, 중건하는 변천의 과정을 겪었다. 1398년 교동에 세워졌으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599년 달성공원에 재건되었다가 위치가 불길하여 1605년 교동으로 옮겼고 1932년 일제침략기 유림집회로 인한 항일운동 봉쇄를 위해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대성전에서는 유교문화의 중흥을 위해 영남각지에서 유림등이 모여들어 연2회 춘추중월(2,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대제를 올리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공포를 기둥위와 기둥사이에로 짜올린 다포식(多包式) 건축으로 단층 맞배기와집이다. 현재 대구광역시 문화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정위에 모시고 사성 (안자, 증자, 자사, 맹자) 을 배향하고 동종과 서종에는 송조이현,신라조이현, 고려조이현, 조선조십사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매월 삭망(朔望)과 내빈객은 분향례를 올리고 입교학생들은 고유를 하고 있다. 명륜당은 대구지역 유림들이 모여 학문과 도의를 강마하던 곳으로 이 지역의 많은 인재(人材)를 육성 배출하였다. 대성전 앞뜰에는 옛 경상도 관찰사의 공덕을 기리는 기념비가 즐비하게 서 있어 진풍경을 이루고 있다. 공자상이 서있는 고요한 앞뜰은 도심 내의 명상공간을 연출한다. 현재에도 명륜당과 유림회관에서는 사서경전 강의, 충효교실, 전통혼례 등이 이루어지는 살아 있는 현대의 향교 역할을 다하고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이성계 李成桂)는 이전 고려 왕조의 불교 중심 정책을 억제하고 일상 생활 예절의 근본이 되는 儒學(유학)을 널리 펴고자 하였다. 그와 동시에 교육을 통해 백성을 문맹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지역전통문화를 선도하며, 유학의 성현등의 제례의식을 올려 예절의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향교를 세웠고, 대구향교도 이 중에 하나이다. 향교는 당초 1398년 교동에 세워졌으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932년 일제침략기 유림집회로 인한 항일운동 봉쇄를 위해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대성전에서는 유교문화의 중흥을 위해 영남각지에서 유림등이 모여들어 연2회 춘추중월(2,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대제를 올리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 로 공포를 기둥위와 기둥사이에로 짜올린 다포식(多包式) 건축으로 단층 맞배기와집이다. 현재 대구광역시 문화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에도 명륜당과 유림회관에서는 사서경전 강의, 충효교실, 전통혼례 등이 이루어지는 살아있는 현대의 향교 역할을 다하고 있다. <좀 더 알아보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신라 이래의 불교 정책을 억제하고 일상 생활 예절의 근본이 되는 유학을 널리 펴고 백성들을 무지로부터 해방하여 단군의 개국이념인 홍익인간을 실현하고자 전국 234개 군현에 향교를 세웠다. 이때가 1398년 (단기 3731년) 태조 7년이었다. 향교의 기능으로서는 첫째, 교육을 통해 백성을 문맹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큰 목적과 둘째, 지역전통문화활동의 근거지로서의 선도역할과 셋째, 공자님을 위시한 여러 성현 군자와 큰 스승을 모셔 제례를 올림으로서 예절의식을 널리 확산하고, 도덕적 인간상 구현과?자아성취와 바람직한 행동의 변화를 추구하는 교육의 목표를 분명히 하였다. 대구향교도 위 목표를 수행하면서 여러 차례 이전, 중건하는 변천의 과정을 겪었다. 1398년 교동에 세워졌으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599년 달성공원에 재건되었다가 위치가 불길하여 1605년 교동으로 옮겼고 1932년 일제침략기 유림집회로 인한 항일운동 봉쇄를 위해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대성전에서는 유교문화의 중흥을 위해 영남각지에서 유림등이 모여들어 연2회 춘추중월(2,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대제를 올리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공포를 기둥위와 기둥사이에로 짜올린 다포식(多包式) 건축으로 단층 맞배기와집이다. 현재 대구광역시 문화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정위에 모시고 사성 (안자, 증자, 자사, 맹자) 을 배향하고 동종과 서종에는 송조이현,신라조이현, 고려조이현, 조선조십사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매월 삭망(朔望)과 내빈객은 분향례를 올리고 입교학생들은 고유를 하고 있다. 명륜당은 대구지역 유림들이 모여 학문과 도의를 강마하던 곳으로 이 지역의 많은 인재(人材)를 육성 배출하였다. 대성전 앞뜰에는 옛 경상도 관찰사의 공덕을 기리는 기념비가 즐비하게 서 있어 진풍경을 이루고 있다. 공자상이 서있는 고요한 앞뜰은 도심 내의 명상공간을 연출한다. 현재에도 명륜당과 유림회관에서는 사서경전 강의, 충효교실, 전통혼례 등이 이루어지는 살아 있는 현대의 향교 역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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