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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 장군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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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신숭겸길 17
    • · 전화번호 : 053-985-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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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 장군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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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구시청 관광과

등록일 : 2014.12.10

이곳은 고려 태조 때 개국공신인 장절공 신숭겸 장군이 후백제군과 싸우다 태조 왕건을 구하고 전사한 곳으로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이다. 신숭겸 장군은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 후 태조 왕건과 함께 후백제군을 상대로 한 공산 전투에서 참전하게 된다. 전투 중 왕건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대신 왕건으로 변장하여 전사하게 되고 왕건은 탈출에 성공하여 목숨을 건진다. 전쟁이 끝난 후 왕건은 신숭겸 장군이 전사한 이곳에 지묘사를 세워 명복을 빌고 일품전지 삼백묘를 하사하게 된다. 지금도 공산전투의 격전지였던 이 팔공산 일대에는 왕건이 견훤에게 크게 패했다는 파군재와 왕건이 탈출해 몸을 숨긴 왕산, 탈출로를 비춰주던 새벽달이 외로웠다는 반야월, 이곳에 이르러서야 안심을 했다는 안심 등의 지명이 남아 전해 진다. <좀 더 알아보기> 이 곳은 고려 태조때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 장군이 순절한 곳이다. 신숭겸 장군은 태봉의 기장으로 배현경 등과 궁예를 내몰고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였다. 장군은 그 뒤에 대장군이 되어 927년(태조 10)에 신라를 위기에서 구하려고 태조 왕건과 함께 후백제군을 상대로 대구 공산(公山)에서 싸웠으나 후백제군에게 대패하였다. 이 싸움에서 장군은 왕건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왕으로 변장하여 김락(金樂) 장군과 같이 싸우다 왕건을 대신해서 전사하였으며, 이틈을 탄 왕건은 장졸로 변장하여 적의 포위망을 뚫고 단신 탈출 한다.태조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겨 그의 시신을 거두어 광해주(지금의 춘천)에 예장하고, 전사한 자리인 이곳에는 지묘사를 세워 명복을 빌게 하는 한편 일품전지 삼백묘를 하사하여 이를 수호하게 하였다. 그 후 지묘사는 고려 멸망과 더불어 폐사되었으나 1607년(선조 40)에 경상도 관찰사 류영순이 폐사된 지묘사 자리에 표충사(表忠祠), 표충단, 충열비를 건립하여 공의 혼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였다. 지금도 산기슭의 봉무정 앞에 있는 큼직한 바위는 왕건이 탈출하여 잠시 앉아 쉬었다고 해서 독좌(獨坐)암이라 부르며 표충사의 뒷산은 왕산(王山)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지명이외에도 대구에는 이 싸움에서 유래된 안심, 해안, 반야월 등의 많은 지명이 남아 있어 당시 격전지의 자취를 잘 보여주고 있다.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이다.

 
이곳은 고려 태조 때 개국공신인 장절공 신숭겸 장군이 후백제군과 싸우다 태조 왕건을 구하고 전사한 곳으로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이다. 신숭겸 장군은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 후 태조 왕건과 함께 후백제군을 상대로 한 공산 전투에서 참전하게 된다. 전투 중 왕건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대신 왕건으로 변장하여 전사하게 되고 왕건은 탈출에 성공하여 목숨을 건진다. 전쟁이 끝난 후 왕건은 신숭겸 장군이 전사한 이곳에 지묘사를 세워 명복을 빌고 일품전지 삼백묘를 하사하게 된다. 지금도 공산전투의 격전지였던 이 팔공산 일대에는 왕건이 견훤에게 크게 패했다는 파군재와 왕건이 탈출해 몸을 숨긴 왕산, 탈출로를 비춰주던 새벽달이 외로웠다는 반야월, 이곳에 이르러서야 안심을 했다는 안심 등의 지명이 남아 전해 진다. <좀 더 알아보기> 이 곳은 고려 태조때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 장군이 순절한 곳이다. 신숭겸 장군은 태봉의 기장으로 배현경 등과 궁예를 내몰고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였다. 장군은 그 뒤에 대장군이 되어 927년(태조 10)에 신라를 위기에서 구하려고 태조 왕건과 함께 후백제군을 상대로 대구 공산(公山)에서 싸웠으나 후백제군에게 대패하였다. 이 싸움에서 장군은 왕건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왕으로 변장하여 김락(金樂) 장군과 같이 싸우다 왕건을 대신해서 전사하였으며, 이틈을 탄 왕건은 장졸로 변장하여 적의 포위망을 뚫고 단신 탈출 한다.태조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겨 그의 시신을 거두어 광해주(지금의 춘천)에 예장하고, 전사한 자리인 이곳에는 지묘사를 세워 명복을 빌게 하는 한편 일품전지 삼백묘를 하사하여 이를 수호하게 하였다. 그 후 지묘사는 고려 멸망과 더불어 폐사되었으나 1607년(선조 40)에 경상도 관찰사 류영순이 폐사된 지묘사 자리에 표충사(表忠祠), 표충단, 충열비를 건립하여 공의 혼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였다. 지금도 산기슭의 봉무정 앞에 있는 큼직한 바위는 왕건이 탈출하여 잠시 앉아 쉬었다고 해서 독좌(獨坐)암이라 부르며 표충사의 뒷산은 왕산(王山)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지명이외에도 대구에는 이 싸움에서 유래된 안심, 해안, 반야월 등의 많은 지명이 남아 있어 당시 격전지의 자취를 잘 보여주고 있다.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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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편의시설 별도의 편의시설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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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시설 주차 가능

· 신숭겸 장군 유적지     전화번호 :  053-985-1330      관광안내문의 :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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