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는 표충사(대구시기념물 제1호) 안에 보존된 것으로 고려개국공신 신숭겸 장군의 순절지에 세워진 것이다. 신숭겸은 평산 신씨의 시조로 전라도 곡성에서 출생하여 광해주(지금의 춘천)로 이거, 918년 태봉의 기장으로서 홍유, 복지겸 등과 궁정혁명을 일으켜 궁예를 폐하고 왕건을 추대하여 개국공신이 되었다. 그후 대장군이되어 927년(태조 10년) 공산동대전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대에 왕건이 포위당하자 그를 탈출시키기 위해 옷을 바꿔 입고 전사하였다. 건립연대는 1819년(순조 19년)경 신숭겸의 28대손 의직이 병장으로 부임시 단을 쌓고 비를 세웠다고 한다. 표충재, 표충사 등과 함께 신숭겸 장군 유적지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년 한식에 향사를 받든다. <좀 더 알아보기> 이 비는 표충사(대구시기념물 제1호) 안에 보존된 것으로 고려개국공신 신숭겸 장군의 순절지에 세워진 것이다. 건립연대는 1819년(순조 19년)경 신숭겸의 28대손 의직이 병장으로 부임시 단을 쌓고 비를 세웠다고 한다. 비신(碑身) : 회백색 수세암으로 높이 185cm, 가로 67cm, 두께 26cm 비개(碑盖) : 팔작지붕형의 화강석으로 가로 120cm, 두께 83cm, 높이 70cm 비부(碑趺) : 화강석으로 가로 110cm, 세로 72cm, 높이 지상 5cm 신숭겸은 평산 신씨의 시조로 전라도 곡성에서 출생하여 광해주(지금의 춘천)로 이거, 918년 태봉의 기장으로서 홍유, 복지겸 등과 궁정혁명을 일으켜 궁예를 폐하고 왕건을 추대하여 개국공신이 되었다. 그후 대장군이 되어 927년(태조 10년) 공산동대전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대에 왕건이 포위당하자 그를 탈출시키기 위해 옷을 바꿔 입고 전사하였다. 왕건은 그의 충절을 기리어 시호를 장절(莊節)이라 했다. 그의 장렬한 전사는 고려역대의 추앙을 받았다. 신숭겸장군의 순절 후 1120년(예종 15년) 8월 왕이 서강에 행차시 그해 10월 팔관회에 참관해서 김락, 신숭겸을 소재로 한 잡극 중 가상(假像)이 관복을 입고 말을 타고 도는 것을 보고 이것이 신숭겸과 김락 두 장군을 말함을 알고 감탄하여 「도이장가(悼二將歌)」라는 향가를 지었다. 표충재, 표충사 등과 함께 신숭겸 장군 유적지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년 한식에 향사를 받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