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로, 부인사(符仁寺) 또는 부인사(夫人寺)라고도 한다.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절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초조대장경의 판각이 이루어졌다고도 말해지는 부인사는 몽골 칩입시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다. 이후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탔다. 지금 건물은 1930년대 초 비구니 허상득(許相得)이 원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m 거리에 있는 암자터에 중창한 것이다. 당우에는 석가모니불상과 아미타불상, 관세음보살상을 안치한 대웅전과 선덕묘, 2동의 요사채가 있다. 이 밖에도 주춧돌, 화려한 문양의 장대석(長臺石)을 볼 수 있다. <좀 더 알아보기> 부인사는 동구 신무동 팔공산 남쪽 중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현재의 부인사는 옛 부인사 경역의 뒷쪽 산밑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절이지만 한때는 고려 초조대장경을 보관했던 호국사찰로서 매우 중요한 사찰이다. 그러나 부인사에 관한 개창시기나 연혁은 잘 알려지지 않아 부인사의 창건연대와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편이다. 당시 7세기 초 창건으로 전해오고 있는 현 부인사에는 신라 선덕여왕 어진을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보름에 신무동 주민과 사찰측 및 경주 김씨 종중에서 선덕여왕 숭모제를 지내는 것에서 부인사의 내력을 짐작할 만하다. 옛 절터가 지금은 포도밭으로 변해 있지만 현 사찰에서 200m 남쪽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고 팔공산 순환도로 남쪽으로 추정 금당좌가 연접하고 있어 옛날 번창기의 사역 범위를 보여주고 있다. 현 부인사는 6.25동란 때 불탄 것을 1959년에 중건한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국내에서 유일한 승시장이 부인사에 개설될 정도로 아주 번창했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도전의 송화암종사우운시서의 기록 중에도 부인사가 팔공산에 위치한 거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부인사는 고려 초조대장경의 판각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현종 3.4년(1013)경부터 조각되기 시작하여 숙종 4년(1099)에 완성된 총 1만 여권의 초조대장경은 처음 여왕사, 개국사 등에 봉안하였다가 그 후 어느 시기에 이곳 부인사에 봉안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여러번의 인간(印刊)이 있었다. 그후 고종 19년(1232) 몽고의 제2차 침입시 원군이 부인사 대장경과 황룡사 9층 목탑을 불태워버렸다. 이상의 자료들을 통해서도 부인사의 창건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사찰의 위치가 지금의 영천 근방으로 팔공산 동화사와 인접해 있었고 거찰로서 고려 초조대장경을 보관하여 외침을 극복하려 했던 호국사찰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