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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우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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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의지를 주된 시상으로 관념적 낭만주의를 개척한 시인 이호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건립된 시비이다. 경북 청도생이지만 주로 대구에서 활동했으며, [이호우시조집](1955), [휴화산](1968) 등을 출간했다. 이 시비는 현재 대구 앞산 공원에 위치해 있다. <좀 더 알아보기> 시조시인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아호는 본명에서 취음하여 이호우(李鎬雨)라고 하였다. 1912년 3월 2일 경상북도 정도의 내호(內湖)마을에서 군수(郡守) 종수(鍾洙)와 어머니 구봉래(具鳳來)의 1남 2녀의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났다. 향리의 의명학당(義明學堂)을 거쳐 밀양보통학교 졸업하고, 1924년 경성 제1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28년 신병으로 낙향하였다. 1929년 일본 동경예술대학에 유학하였으나 역시 신병의 재발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다음해 귀국하였다. 1934년 김해김씨 순남(順南)과 혼인하였다. 광복 후 대구일보의 편집과 경영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1952년 대구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고, 1956년 이후 2년간 대구매일신문 편집국장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편으로는 시작(詩作)활동을 하여 지방 문화창달에 공적을 남기기도 했다. 시작활동은 1939년 동아일보 투고란에 <낙엽>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으며, 1940년 <문장> 6.7합병호에 시조 <달밤>이 이병기(李秉岐)의 추천을 받음으로써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작품집으로는 1955년에 <이호우시조집 爾豪愚時調集>이 간행되었고, 이어 누이동생 영도와 함께 낸 시조집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중의 1권인 <휴화산 休火山> (1968)을 발간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의 시조관은 한 민족, 한 국가에는 반드시 그 민족의 호흡인 국민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시조에서 찾아야 한다고 밝히면서 국민시는 간결한 형(型)과 서민적이고 주변적이며 평명(平明)한 내용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작품에 잘 반영이 되어 있다. 그는 거의 평생을 시조에 전념하다가 1970년 별세하였는데, 그의 사후인 1972년 대구 앞산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 1955년 첫 작품집인 <이호우 시조집>으로 제1회 경북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편저로는 <고금시조정해 古今時調精解>가 있다.

이호우시비 - 이용시간,이용요금,장애인 편의시설,주차시설
이용시간 제한없음
장애인 편의시설 별도의 편의시설 없음
한국어 안내서비스 안내 서비스 없음
외국어 안내서비스 안내 서비스 없음
주차시설 주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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