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사키 린따로는 일제시대 대구지역 관개용수 확보를 위한 저수지를 조성하는 등 지역의 농업 발전을 위해 크게 공헌한 인물로 묘소는 고인의 뜻에 따라 저수지 옆에 만들어졌다. 1914년 가족과 함께 대구에 정착한 그는 농업에 종사하며 현지 농민이 가뭄과 홍수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저수지의 설계, 측량을 끝낸 후 경북도의 일본인 지사에게 직언을 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한국인을 배려하지 않은 것은 일본인의 잘못”이라고 격노하여 조선 총독과 직접 면담하고 공비 1만 2천엔(현재 10억엔 정도)을 받아 못을 조성. 관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