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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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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대견봉을 넘어 가파른 산기슭에 위치한 암자로 유가사에서는 1.2㎞되는 거리에 있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신라 혜공왕때 도성국사가 지었다 전한다. 고려 성종 원년(981)에 성범대사가 만일 미타량을 열고 50여년 동안 힘써 수도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도성암 극락전 앞에는 신라시대에 건립된 도성암 삼층석탑도 볼 수 있다. <좀 더 알아보기> 2003년 9월 당시 한반도를 할퀴고 간 태풍 매미는 수많은 인명, 재산 피해와 함께 우리들의 가슴에도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안겨주고 떠났다. 더구나 수해와 산사태, 강풍으로 인한 각 사찰의 피해도 커 불교계가 합심해 복구에 박차를 가하는 결집된 힘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창녕 화왕산의 도성암은 재산피해와 더불어 흙더미가 요사채를 덮쳐 인명 사망피해까지 생겨 불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불자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 것은 몇 개월 전 대구지하철 참사 사고로 읽은 두 딸의 명복을 빌기 위해 도성암을 찾은 어머니가 산사태로 목숨을 잃게 된 사연이었기 때문이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한동안 도성암은 피해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매우 험한 상황이었으나 태풍에 대비한 수로를 건설하고 새로운 전각을 세워 신라고찰 도성암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도성암은 신라 현덕왕 2년(810)에 창건한 고찰로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한 때 역사가 끊어진 사찰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도성암은 아미타부처님의 위신력에 기대어 창녕의 주산이자 절경으로 잘 알려진 화왕산 중턱에 자리하면서 현묘한 자성을 찾는 염불기도 영험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도성암은 2년 전의 악몽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느 산사와 같은 평온을 되찾았다. 최근에는 보제루 불사를 마치고 단청불사 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또 얼마 전에는 대웅전의 석조여래좌상이 도유형문화재로 지정을 받게 되는 경사를 맞기도 했다. 비온 뒤 땅이 굳는다는‘케케묵은 진리’를 다시금 재확인하는 장면이다. 부디 앞으로의 도성암이 굳은 반석 위에서 튼실하게 정법을 수호하는 도량이 되길 바란다.

도성암 - 이용시간,이용요금,장애인 편의시설,주차시설
이용시간 제한없음
장애인 편의시설 별도의 편의시설 없음
한국어 안내서비스 안내 서비스 없음
외국어 안내서비스 안내 서비스 없음
주차시설 주차 가능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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