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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축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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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대구토성을 돌로 다시 쌓은 후 이를 기념하고자 세운 비이다. 비는 직사각형으로,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운 간단한 모습이다. 비문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2,145보(步)이며, 네 개의 문을 만들고 성을 지키기 위한 군량, 전포 등을 갖춘 창고를 두었다. 석성의 공사기간은 6개월이며, 동원된 인원은 78,534명에 달한다. 성이 완성된 뒤에는 여러 장사들을 모아 활쏘기대회를 열어 상을 주었다 한다. 광무 10년(1906)에 성은 헐리게 되었고, 비는 1932년 향교로 옮겨 보존되다가 198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좀 더 알아보기> 영영축성비는 조선 영조 13년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 도호부사였던 민응수(閔應洙)가 임진왜란으로 허물어 없어졌던 대구읍성(당시엔 토성)을 석성(石城)으로 축성하고 난 뒤 그 기념으로 세운 것으로 당시 읍성의 규모와 작업상황이 적혀있다. 성을 쌓고 난 뒤 수성(守城)을 위하여 양향(糧餉), 전포(錢布), 기기(器機) 등을 비치한 수성창(守城倉)을 건립하여 불의의 사태와 훗날의 수성에 대비하였다. 축성이 끝나자 여러 장사들을 모아 활쏘기 대회를 열었고 영남 제일관이라 편액이 걸린 남문에 큰 연회를 열어 각기 공로에 따라 시상하였다. 축성에 대한 행상이 끝나자 선화당에서 성대한 낙성 축연을 베풀었고 이듬해인 1737년 2월 상완일(上浣日)에 영영축성비를 건립한 것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원래 이 비가 세워진 곳은 남문 밖 관덕정(觀德亭)터였으나 1906년 박중양이 대구 읍성을 헐면서 그 자리를 도로로 만든 까닭에 구 달성군청(현재 대구백화점 옆) 부근으로 옮겼다가 1932년 향교로 이전하여 보관하다가 1980년 다시 현 위치에 옮겨 보존하게 되었다.

영영축성비 - 이용시간,이용요금,장애인 편의시설,주차시설
이용시간 제한없음
장애인 편의시설 별도의 편의시설 없음
한국어 안내서비스 안내 서비스 없음
외국어 안내서비스 안내 서비스 없음
주차시설 공용주차장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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